《나에 살던 고향은》 김정민·배임정 저자 후기

김정민 | 2021-12-13 | 조회 783

 

1. 《나에 살던 고향은》을 쓰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했나요? 장편의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것이 두렵지 않았나요?

책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책을 ‘삶의 번역자’라 뜻매김 하고 싶습니다. 삶의 여러 굴곡과 경사에서 책을 알고 동행할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로 저는 내밀한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죠. 보답의 차원에서 시작한 일입니다만 삶을 언어로 옮기는 저의 일에는 늘 좌절감이 수반되었습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오다가도 끝내 형태를 이룰 수 없는 날들이 대부분이죠.

재주가 생생하게 절로 움직이는 날은, 글쎄요. 적어도 저는 그런 행운아는 아닙니다. 질서 있는 배움이나 조력자가 없기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세상은 그런 것들에서 선명하게 선택된 자들만이 유일로 이루어 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제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남길 유일한 유산입니다.

2. 용마산 아래의 마을을 배경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워낙 바쁜 세상에 살고 있어요. 모든 인과 관계가 신속하게 전개되어야 하고 사리 판단을 너그럽게 할 여유는 없죠. 글의 구성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소재는 독창적이면서 자극적이어야 하죠. 묘사적인 글쓰기와 순간의 디테일에 무게를 두는 문장들은 속도감을 늦추기에 간추려지는 것 같아요.

저는 정서와 사정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글을 좋아합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하게 미치는 단어와 문장을 고민한 글이 좋아요. 배경은 길입니다. 그것들을 타인들과 연결해 주는 길. 그래서 지금 세대들은 짐작하기도 어려운 80년대의 흔한 가난을 단서할 수 있는 산동네 마을을 배경으로 세웠습니다.

아직도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곳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어쩐지 낯선 경남 마산의 용마산 아래 산동네. 그 배경을 길로 잡아 이야기를 헤쳐 나가기로 한 것이죠. 물론 필력이 훌륭한 길잡이가 되면 좋았겠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도움닫기를 독자들에게 송구스럽게도 기대어 봅니다.

3. 바른북스와 함께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 혹은 만족한 부분을 적어주세요.

글을 써 놓고도 이쪽의 일이 생경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원고 투고를 하면서 시놉시스 한 장 첨부할 요령도 없었던 제가 출판사 반기획으로 덜컹 계약을 했으니. 아르떼지 어쩌고 4도 컬러 어쩌고 100g 미색모조지는 또 무어람. 여기까지 걸어온 모든 과정이 마치 남의 일처럼 아직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먼저, 인쇄 승인 당일 직전까지 거듭 살피고 문장의 쉼표 하나까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아 교정해 주신 담당 편집자님! 솜씨나 기술이 걸출한 다른 글들에 비해 들었을 수고가 곱절이었을 것입니다. 그간의 노고에 전하는 송구와 감사의 마음 진심입니다.

‘편집장님! 온라인 서점에서 어떤 책은 막 이미지가 들어가고 자세히 소개를 하던데 그게 뭔가요? - 입체표지요? - 모름…. 못 알아들음…. - 아! 상세페이지 말씀하시는구나! - 저도 할 수 있나요?’를 시작으로 서점 매대 광고에 이르기까지 수많았던 질문들의 귀결은 언제나 ‘가능’이었습니다. 쓴 이의 언어를 세상으로 치환하기까지 온통 단언컨대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소란을 기꺼이 거느려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4. ‘어쩌다 그린 이’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이 작업은 그린 이 개인의 자아의 실현도 취미나 흥미도 아닌 오로지 ‘쓴 이’의 감성에 동참하고 책의 출간에 ‘참여한다는 취지’에 가장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림이 업도 취미도 아니었으니 밑천 없는 그리기는 작업하는 내내 갖가지 고충과 절망감이 동료처럼 책상에 함께 앉아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니 우습게도 제대로 그려 보고 싶어졌습니다. 전문적인 일러스트에는 당연히 비할 바가 아니나 그냥 제가 가진 렌즈를 통해 보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을 담은 그림으로 그려 내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느낌을 온전히 그리는 것 자체도 매우 큰 난관이라 일단 여기서 열심히 그리고 또 그리고 있겠습니다.

5. 삽화를 그리며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목표를 정하고 이루는 것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가치를 더 두고 싶습니다. ‘어쩌다 그린 이’가 되었듯이 무엇이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으나 작업을 하는 동안 즐거웠고 그다음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에너지는 그리지 않는 다른 시간 동안의 나에게도 또 나의 주변에도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을 불게 합니다. 그런 하루들이 쌓여 그려지게 될 나의 인생은 어떤 그림이 될까요?

6.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몇 해 전에 쓴 이와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쓴 이가 “언젠가 우리 작은 책방을 하나 차리자.” 하였습니다. 자기는 글을 쓸 터이니 저는 디자인을 해서 책을 내고 그 책을 우리가 낸 책방에서 팔고 좋아하는 커피도 팔자면서. 그러니 바리스타 자격증도 미리 따 두자면서 서로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끝도 없이 펼쳐 갔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부터 우리는 그 꿈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때 그렸던 꿈에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이야기를 채워가며 꿈꾸는 동안 즐거우니까요. 추억할 지나온 길도 기대되는 남은 길도 앞으로 사는 내내 두고두고 나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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