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지 않은 번호와 누르지 못한 마음이》 엄간지, 아꼬박 저자 후기
엄간지, | 2022-08-23 | 조회 773
1. 《지우지 않은 번호와 누르지 못한 마음이》를 출간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엄 : ‘얼떨떨’이 이런 마음이구나 싶습니다. 일기처럼 썼던 글들이 책으로 나온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네요. 내용부터 부끄럽고요. 새롭게 접해본 출간이라는 작업이 제 삶 속에서도 좋은 자극이 된 거 같습니다.
박 : ‘일단락’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떠오릅니다. 20대를 채웠던 이별과 감정들이 물성을 지니게 됐으니 인쇄된 글자 한 획 한 획 꽃잎처럼 뜯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요. 비로소 떠나 보낼 수, 떠나갈 수 있을듯해요.
2. 《지우지 않은 번호와 누르지 못한 마음이》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엄 : 집필을 결심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의 내 마음을 써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날들이 있었어요. 뱉지 않으면 과음한 듯 엄한 곳에 쏟아버릴 거 같은? 이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지우지 않은 번호와 누르지 못한 마음이》라는 모양이 나온 거 같네요.
박 : 마찬가지로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다만 프리랜서로 일이 생길 땐 일과 술, 없을 땐 술과 낮잠으로 하루들을 채우며 술잔을 떼지 못했죠. 시기 좋게 엄간지 씨가 권해줘서 가볍지만 든든한 마음으로 교환 일기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술 마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글에 소주를 조금 탄 것 같기는 하지만요.
3. 책을 집필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또는 즐거웠거나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엄 : 어떻게 구성을 해야, 어떤 순서로 보여드려야 저희가 보여드리고자 했던 이별의 적나라한 모습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까를 제일 오래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잘 쓰인 글도 좋지만 솔직하고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들 위주로 고르고 감정선이 깨지지 않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박 : 일기처럼 썼던 글들이었어요. 출간을 준비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나 개선해야 할 표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도 고치지 말자, 마음먹음이 첫째로 힘들었고 이를 실천함이 가장 곤욕이었어요. 지난날의 우리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자 수정은 최소로 했습니다.
4. 책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애착이 가는 구절이 있나요?
엄 : 제가 쓴 글 중에서는 〈안녕. 사랑했던 사람아.〉라는 글을 꼽고 싶네요. 책을 전반적으로 구성하면서 그리워했던 그 사람에게 마지막을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랑과 사람을 보내는 제 스스로의 솔직한 마음과 처절한 모습이 잘 보이는 거 같거든요. 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이별의 말이 아닐까 싶어요.
아꼬박 씨가 쓴 글 중에서는 책 제목이기도 한 〈지우지 않은 번호와 누르지 못한 마음이〉를 뽑고 싶습니다. 취한 발걸음을 멍하니 옮기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상처와 미련이 뒤섞인 한 남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박 : 엄간지 씨의 ‘헤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표현이 참 예뻐요. 예쁘다는 얘기가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정확한 표현이 곧 예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별이야 일찌감치 겪었지만 그랬음에도 생각도 나고 아파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렇잖아요. 솔직하면서도 딱 맞는 표현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이 책 자체도 헤어지고 있는 과정의 하나로 볼 수도 있고요.
5.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셨나요?
엄 : 이별을 한 번 더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겠지만 그리하진 않았습니다. 하하. 저는 지금까지 제가 썼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저의 마음과 그때의 기억들을 되뇌어보곤 했어요. 그럼 ‘텅 빈 내 마음에 붙어있는 남은 찌꺼기’ 같은 하고 싶은 말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박 : 글은 써질 때, 쓰고 싶을 때 썼어요. 그러다 보니 게으름도 피우게 되고 뭐…… 엄간지 씨가 고생했죠. 일정한 주기는 꼭 지켜서 쓰기로 했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 참아줘서 참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6.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엄 : 술자리에서 독자님이 친구들에게, 때로는 친구가 독자님에게 했던 이별과 사랑이야기 같은 글들입니다. 아직도 이별하고 있는 독자님들께 드립니다. 그래도 우리들, 푸르렀다고.
박 : 술을 마시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별 뒤에 친구와 한잔하고 혼자 집에 돌아왔을 때, 딱 한 잔 정도만 더 술이 필요할 때, 오롯이 혼자 이별을 감당하고 싶지는 않을 때, 그럴 때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초라한 게 나만은 아니구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